[Un-Soul Buddy] Mutual Assured Determination

2022. 11. 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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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던 함박눈이 모조리 공중에서 춤을 추다 얼어붙은 것처럼 한순간에 얼음 결정으로 화했다.
장소를 착각한 듯 피어난 세빙이 반짝이는 허공을 향해 쿠죠 렌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세상의 시축을 돌리던 시계가 고장 난 것처럼 잠시 만물이 멈춘 듯 보였고, 투명한 결정체 표면을 따라 맺히는 빛이 풍경을 좁디좁은 면에 가두었다.
연말을 고작해야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남겨둔 빅 이벤트 데이에 거리는 이 날을 화려한 색채로 덧칠해 기억에 보존하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짜 사탕 막대와 솜이 주렁주렁 붙은 양말, 호랑가시나무 열매 이미테이션과 황금 종, 리본, 전자용품 상가에선 대뜸 꺼내 든 만국기가 흩날리는 상가 주변에 주홍색 불빛이 둥둥 떠다녔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좌판대 위는 텅 비어 있었고, 옆에서는 고소하게 익어가는 닭고기 요리 냄새가 풍겼다.
자선냄비 옆으로 옹기종기 손을 잡고 지나가는 4인 단위의 가족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점을 밟으며 렌의 얼굴 앞으로 입김이 피어올랐다.
이 밤의 풍경과 그의 표정 사이를 누비듯 허연 숨이 떠올라 느릿하게 쏟아지는 얼음 알갱이 사이를 뒤덮었다.
친족과 나누는 따스함으로 채워진 유년을 보내지 못했대도 그 풍경이 이제 와서 부러울 일은 없었다.
저마다 살아온 한 해의 평가서를 받듯 마음의 풍요로운 결실을 재촉하는 듯한 이 번화한 거리에 서서 그는 약속한 소형 시계탑 앞으로 향했다.

만인의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한풍이 날아다녔지만, 그런 현상이 성탄절 밤의 부산함을 함께 쌓아 올리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을 묶어 두지는 못했다.
눈길을 현혹하는 장난감 기차 모양의 데코레이션, 가두에 설치된 거대한 주크박스, 투명한 윈도우 너머에서 따스한 불빛을 받아 글리터가 반짝거리는 스노글로브 등이 즐비한 길목은 상업의 메카처럼 보였다.
그런 가운데 외부에 설치해 둔 스피커를 따라 흘러나오는 캐럴의 곡조는 사뭇 경건해서, 어울리지 않는 느낌에 렌의 볼이 웃음기로 씰룩거렸다.
「살 건 샀어?」
「이거.」

 코헤이가 겅중 뛰어 시계탑 앞으로 다가왔다.
그 품에 들린 짐이 한 아름이었다.
인간의 문명에서 즐기는 축일의 의미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던 자신의 무기가 벌인 돌발 행각에 렌의 눈에서 흰 부분이 좀 더 크게 확장되었다.
「어라, 무슨 일로 변덕이 분 거야?」
「크리스마스니까.」

「얼마 전에는 하찮은 걸 기념하는 건 싫다고 하지 않았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랬나?」
코헤이가 범상치 않을 정도로 잔잔한 얼굴로 대꾸했고, 렌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버벅거렸다.
「그래, 진짜 탄생일도 아닌 예수가 왔다 간 날이라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생각이 바뀌었어.」
코헤이가 옆으로 붙자 무엇이 들었는지 가득 껴안은 백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뀌어?」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아아~.」
 
유별난 일이 아니라곤 할 수 없겠지만, 유행에 덩달아 설레는 면이 상대에게도 있겠거니 싶었다.
어쨌든 그 자신도 이 시절의 흥에 조금 들뜬 건 사실이었으므로, 캐럴의 선율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려던 것을 멈추고 렌은 상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걸었다.
「돌아가면 칠면조 요리를 할 거야, 얼마 전 시킨 거 기억나지?」
「또?」
「또라니?」
 
「그냥.」
「칠면조를 먹은 건 처음이잖아.」
코헤이의 작은 중얼거림을 따라 피어난 들숨이 잠시 뿌옇게 둘 사이의 영역을 덮었다.
「그랬지.」
「음, 내키지 않으면 지금 얘기해도….」
 
「아니, 상관없어.」
인파를 빠르게 벗어날 심산인지 걸음을 휙휙 옮겨 흰 얼음가루가 달라붙은 가문비나무 앞으로 향하며, 코헤이가 가볍게 덧붙였다.
「뭐든 좋으니까 어서 돌아가서 먹자, 마스터.」
두 개의 엇갈리던 도보 소리가 곧 몸을 맞댄 심장 박동이 그러하듯 하나로 겹쳐졌다.
허공을 찬란하게 적시던 결빙 덩어리가 어느새 땅으로 스러져 발밑이 질퍽질퍽했다.
 
「여기 든 건, 뭐야…소설이야?」
「성경책이야.」
「오늘을 기해서 문화생활이라도 시작하고 싶어진 거야?」
「인간을 좀 더 깊이 이해해보기로 했어.」
훌륭하게 사람으로 의태한 무기체의 언어를 해석해보려던 렌은, 그 발화에서 어떤 장난스럽거나 짓궂은 의도를 포착하는 데에 실패하고 그냥 웃어 보였다.

착실하게 고른 온도를 유지하고 있던 실내로 들어서자 언 손은 쉽사리 녹아내렸다.
「어린 예수님이 온 날이니까, 기념비적이네.」
「마스터는 내가 그러기로 결심한 게 기뻐?」
「아……어느 쪽이냐 하면, 음, 나쁘지는 않아.」
「흐음.」

포장지를 여는 동작으로 식탁 위가 잠시 부산스러워졌다.
오늘의 휴식을 위해 해묵은 일거리조차 금주까지 부지런히 해치운 보람이 있었다.
요리를 데우기 위해 용기를 재빨리 벗겨내던 렌의 시선이 그를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갔다.
“렌.”
평소와 조금 다른 호칭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건 과장이겠지만, 어쨌든 화려하고, 분주하고,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크리스마스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인생사에서 크게 돌출되는 바는 없었던 오늘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는 징후가 그 말에 담겨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겠다.



63,

「무, 슨 일이야?」
「왜 말을 더듬는 거야?」
「그야, 갑자기 그렇게 부르니까.」
「갑자기가 아니야.」
「평소랑 다른 건 맞잖아.」

「조금은 더 창의성을 발휘해 봐, 마스터.」
「그래, 그게 디폴트였다고.」
「내가 기본 값을 따라줘야 게 기쁘겠어?」
「……아니.」
오늘의 만찬을 위해 준비한 물품이 하나둘 채워질수록 부엌의 광경은 점차 호사로워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상의 변주가 더해진다 한들 색다른 기분 전환 요인과 다를 바 없어서, 렌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건, 이 문화권에선 유별한 친밀도를 보이는…….」
「알아.」
「그, 그래?」
「아니까 한 거야.」

「역시……달라진 거 맞잖아.」
「하지만 렌은 그래도 괜찮다고 한 거 아냐?」
「맞아.」
사소한 의문을 떨쳐둔 채, 자기 몫의 짐을 전부 푼 쿠죠 렌은 그제야 다시 자신의 등 뒤를 살폈다.
「많은 걸 샀네.」

「사 보고 싶어서.」
「비잉에게도 크리스마스 특수 같은 게 존재하는 걸까…….」
「그런 거라고 생각해 둬.」
「잠깐, 진짜야?」
「뭐든,」 신기할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 속에서 「나쁘지 않으면 괜찮잖아.」

「그런 거려나…….」
익숙하지 않은 불안감이 손쉽게 잠재워지는 순간, 긴장이 턱 풀렸다.
「연구실에서 나는 가변성이 적은 존재라고 했지만.」
「응, 기억하고 있어.」
「이런 변화는 인간성을 구축하는 증거라며.」

「그런 얘기도 했구나.」
「내 쪽에 좀 더 관심을 가져, 마스터.」
「관심이 있으니까 하는 얘기라고 생각하는데…….」
「칼질에 멋 부리지 말고.」
「머, 멋이라니.」

「소금을 뿌릴 때 갑자기 자세는 왜 잡는데? 꼴사납게.」
「하아…….」
「왜?」
「평소의 너다, 싶어서.」
「구박해야 안심하는 패턴은 변함이 없네.」

「잠깐, 그렇게 파악했단 식으로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뭐, 됐어─렌은, 인간이잖아.」
「이제 와서 우리 종의 차이를 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차이가,」 자신이 기호 삼아 잔뜩 싸들고 온 짐을 비로소 풀어내면서, 무기는 주인에게 「있어.」
「으음.」

「알고 있잖아, 마스터도.」
「무엇을?」
「나랑 그쪽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갑자기 그렇게 말해도……음, 됐다.」
「껍질 다 벗겼다고 손 놓지 마, 칼이 떨어져서 다칠 테니까.」

「뭐─으앗.」
「조심하랬잖아, 어쨌든 마스터의 “스키마”는 나랑은 달라.」
「그건, 그렇지─순간 말이야, 내 코드네임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지 뭐야.」
「나는 무기로 태어나 무기로 살아갈 내 삶에 의문을 갖지 않아.」
이변을 ‘평소와는 다른 일’로 규정한다면, 그것으로 점철되었을 오늘 하루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의구심이 렌의 머릿속을 점령했는데, 그건 아마 이 대화가 익숙하다는 듯 반응하는 상대의 담담한 기질에서 기인한 불안 탓이었다.

「사람도……」 짧게나마 자신의 생을 반추하느라 사이에 침묵을 둔 채, 그는 「비슷해질 수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데.」
「달라.」
「달라?」
「쿠죠 렌은, “스키마”는, 그러면서도 의심을 품을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삶은 무기로서의 역할 외의 곳에 있다고 보잖아.」
「오늘따라 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네.」
 
부정할 이유는 없었기에, 가볍게 끄덕거리면서 그는 자신의 무기의 삶을 촉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 없을 식사 준비의 막바지를 위해 자른 칠면조 고기를 내려놓고 식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었고, 때로는 수단으로 변성시켜 취할 수 있었다.
“아직도야?”
유난히 크게 울리는 목소리 뒤에는 저 멀리서 여전히 울리는 크리스마스 송의 반주가 울렸고, 누군가의 내일을 오늘보다 따뜻하게 바꿔 나가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곳곳에서 자선을 요청하는 종소리가 뒤따랐다.
「뭐가?」



46

조금 뜸을 들인 답변이 뒤따랐다.
「……마스터의 요리 준비.」
두 명분의 접시와 보울, 포크와 스푼을 차곡차곡 내려두며 렌의 머릿속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기능 면이 아니라 휴식과 미감의 측면에서도 제법 그 몫을 충실히 하는 이 집을 마련하기까지 그는 자신이 발로 뛰었던 순간마다 흘린 땀의 값을 어림잡을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를 사무적인 명제로 규정하는 그 모든 현장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제법 치열하게, 그의 삶에서 내내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곧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그런 범주를 벗어난 부분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바라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나 가늠자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기 위한 그 바깥의 삶을 부단히도 그린 결과라고 했을 터였다.
그렇다곤 하더라도 그게 제법 풍요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지금의 순간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기에, 그는 쾌활하게 대꾸했다.
「곧, 다 됐어.」
「끝내지도 않은 걸 과거형으로 말하네.」

「하하.」
그리고 자신의 무기가 그런 지점을 짚었다는 데에서, 쿠죠 렌은 조금 더 유쾌해졌다.
「사람은 형이하학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내 은인이 이야기했거든.」
「……그래.」
「오늘따라 그게 생각나네, 자아─나는 그게 ‘남들만큼’을 의식하지 않아도, 멋진 성탄 휴일을 보내는 데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
「슬슬 더 보여줘도 되지 않아?」
「……무엇을?」
「네가 뭘 사 왔는지, 원래 들고 온다던 간식보다 짐이 수십 배는 늘어나서 놀랐어.」
「갖고 싶다고 생각했어.」

「흐음.」
「마스터의 주머니를 그만큼 가볍게 하겠지만, 괜찮지?」
「이미 질렀으면서 그런 말을 해도……굳이 환불받을 건 아니지만, 혹시 질릴 것 같다면 얘기해.」
화재를 우려해 캔들 라이트를 모방한 조명의 전원을 올리면서, 그는 잠시 후 상영할 영화의 내용을 고민했다.
오늘을 맞이해 골라둔 게 있지만, 자신의 무기가 가족애를 설파하는 내용을 보면서 한심함에 그의 종아리를 걷어차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질리지 않을 거야.」
놀랍게도 무기는, 인간의 신체를 외형상으로는, 그리고 몇몇 기능적 측면에서는 상당히 정교하게 모방한 얼굴을 끄덕이며 흔쾌히 대꾸했다.
「그렇구나─코헤이는, 그런 부분에서 ‘사람이 되어가는 거구나.’」
「…….」
고갯짓이 멎었다.

「왜, 별로…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었어?」
「그렇지는 않아.」
「그럼.」
「이게 이로울까를 생각하고 있어.」
「무기로‘서’ 잘 싸우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한심하다는 듯한 어조가 이어져서, 그 평소다움에 렌은 약간 안도했다.
「어차피 나 혼자의 전력으로 안 된다는 거 알아, 네가 써 줘야 하지.」
「……역시 이상한데, 혹시 오늘 뭘 잘못 먹─으아아악.」
정강이를 걷어차인 고통에 펄쩍펄쩍 뛰느라 테이블 세팅 완비는 잠깐 미뤄졌다.

「실례잖아.」
「…으윽, 그건, 내가 잘못…했어.」
코웃음을 가볍게 치며 무기가 식탁 옆에 붙은 보조 데스크 위로 와르르 쇼핑 품목을 쏟아냈다.
아까 표지를 슬쩍 살폈던 책과 만년필, 코주부 장식이 붙은 장난감 안경과 숄 사이에서 작은 스노볼이 조심성 없이 굴렀고, 렌은 비명을 질렀다.
「잠깐, 고장 나잖아!」

“일어나지 못하네.”
「당연하지, 물건은 홀로서기를 못 한다고!」
시즈닝을 마친 고기에서 김이 피어올랐고, 시즌 컬러를 맞춰 적색과 녹색의 야채로 세심히 장식한 샐러드 위에는 잘게 갈린 파슬리가 뿌려졌다.
구르던 물건을 똑바로 세우자 유리구 안에서 나부끼던 눈송이가 와르르 위쪽을 향해 역류했다.
금빛으로 부푼 기포가 안에서 부글거리는 샴페인 병을 들어 올리며 렌은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49

「아무튼…그런 의문을 갖는 것도, 나는 좋다고 생각해.」
「내가 바뀌는 게 싫지 않아?」
「싫을 리가, 글쎄.」
잠시 자신의 보수성을 고민하던 쿠죠 렌은, 그런 기질이 있어봤자 결국 현재와 같은 평온한 여유를 구가해 나가고 싶다는 마음쯤으로 작용하리라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는 상대가 앉을 의자를 드륵 끌어왔다.
「그야…살아 있는 건 변하잖아?」

「살아 있는 건.」
「네가 그랬던 것처럼 바뀌고.」
「마스터에게는 그 변화가 많이 보여?」
「적어도 평소답지 않다고 생각한 몇몇 행동은 그래.」
「흐음.」

「그렇게 내 말투를 따라 하게 된 것도.」
「따라 하지 않았어.」
「……그래, 그렇다고 치고서, 어쨌든.」
삶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의문이 해결되고 나서야 역으로 사람은 그것을 돌아볼 여력이 생겼다.
그 사실이 어쩌면 기꺼울지도 몰랐으므로, 이 청년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호선이 떠올랐다.

「바뀌어서 아쉬운 것들도 세상엔 분명 있겠지만…….」
「응.」
「바뀌어서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
「네가…….」

무기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상대방의 안에 언제나 확고하게 살아 있었기에, 가끔 그 경계가 까다롭게 느껴질 때가 전무했다고는 양심상 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대뜸 ‘익숙하지 않은 짓 하지 말라’라든지 ‘한심해 보인다.’ 따위의 이유로 발길질을 날리지 않는 무기의 유순해 보이는 태도에 조금 안도하면서, 렌은 실내의 빛이 산란하는 유리잔 위에 술을 부었다.
「…조금은 ‘사람으로서의’ 대화에 익숙해진 것 같아서, 더.」
「사람답다는 건.」
「어, 그거야말로 어려워서─도구가 아닌 삶부터 시작해볼까?」

「그건 이미 얘기했잖아, 마스터는 바보야?」
「하하…….」
「내가 정리해줄게, 날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아?」
할로겐 등 아래에서 고즈넉한 겨울의 정취를 더하는, 초를 의태한 인공조명이 가물가물하게 흔들렸다.
대답은 선뜻 내뱉어졌다.

「응.」
「사람인 내가 편해?」
「무기인 네가 불편하단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래.」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한 거구나, 마스터도?」
「…지금 당장 필요하단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선 그러려나.」
 
그는 이제 식사하자, 라고 채근하는 대신 자신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총으로 되돌아갔을 때와 유사하게, 그 몸체의 색을 똑 닮은 새카만 머리카락이 흔들거리며 단백질 섬유의 움직이는 것조차 하나의 모방이라지만, 어떤 흉내는 때로 원본의 아우라와 무척 흡사해지거나 때로 압도하기 마련이었다.
비록 지금 신체가 분해된다면 절단면은 새카맣고, 이따금 무기 자신의 자아가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삶을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한 탓에 핏줄 대신 잉크 같은 액이나 전기 불꽃이 파르르 튀는 회선을 노출하는 육신이래도 겉보기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타자나 심지어 종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무기물에게까지 감정적 맥락을 스스로 덧붙이고 때로 몰입하는 인간의 천성이 어리석다곤 해도, 그 우둔한 기질로 빚어내는 관계의 망이 그들을 스스로 빛나지 않은 이 별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존재로 구축해왔다.
모든 인연이 진득한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이어질 수는 없대도 그는 언어와 비언어를 포괄하는 소통에 연연하는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습성을 부정하지 않았고, 때로는 그것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밖에서는 모 동요처럼 자꾸만 바깥의 사정을 살피고 싶게 하는 즐거운 웃음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쾌한 소음, 그리고 오늘이 종결지어지기까지, 혹은 연말까지 울릴 듯한 노랫소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즐거운 만찬을 만들기 위해 그가 일구었던 노력의 흔적이 이 자리에 있었다.
물건만이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능력적으로 자립을 꾀할 수 있대도 정서적 지지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동물의 천성으로서 쿠죠 렌은 재차 답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예수도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게 아니려나.」

「그래?」
「아마도.」
슬슬 만찬을 들자는 의미로 렌의 손가락이 실내의 풍광을 온전히 담아낸 유리잔 표면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시 시작하자.”
그림자가 소리 없이 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잠시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쿠죠 렌의 두뇌가 기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현상이 보이는 불합리성이 그의 뇌리를 잠시 정지시킨 탓이었다.
그의 무기가 손을 겹쳐 잡는 순간 렌은 의태란 목적엔 부합하지 않아서 그 자리에 새겨져 있지 말았어야 할 굳은살의 감촉을 느꼈고, 깊게 새겨진 상흔을 뒤늦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징조는 이날 밤 그를 어디로 옮기려는 것일까?
인간을 닮아서 지친 기색이 선명하게 어린 얼굴로 무기가 속삭였다.

「아직 멀었나 봐.」
「…….」
「이해한다고 해서 상황은 해결되지 않아.」
「…….」
「사람이란 건 이렇게 긴 고통을 버티며 살아야 하는 거구나.」

철컥, 마치 닳고 닳은 것처럼 본연의 모습보다 한결 짧아진 총신이 쿠죠 렌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졌다.
그리고는 그의 팔을 천천히 이끌어 총구를 한 자리에 두고 고정했다.
친애를 나누는 사람이 으레 보일 수 있는 무방비한 모습 그대로, 렌은 자신의 가슴팍을 겨눈 무기 끝에서 그 어떤 적의도 찾을 수 없어서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이해…….」
「이해는 슬프고 무서워, 하지만 그러니까 너를 더 내버려둘 수 없어.」

마지막 총성이 비산하기도 전 멀리 들리던 노래가 끝나고, 공간이 부서진 여파가 차례로 비산했다.
끝을 보지 못한 인간은 눈꺼풀을 감았고, 성탄일의 휴식이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는 역사만이 다시 어딘가에 기록되었다.
무기는 불현듯 이제껏 단 한 번 넘겨보았던 이브의 일화를 떠올렸다.
이해의 필요성은 이해해야 할 타자와 이해할 수 있는 자아가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기 마련이었다.
그 모든 시도가 비극을 빚어낸대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인간성이라는 층위를 구성하는 가장 어리석고 사랑스러운 부분일지도 몰랐다.

ごくろうさん、 よろしく。
관측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분투하는 이들은 오르골의 노랫소리가 정지하고, 잠시 뒤 찰칵 되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마스가 반복되는 특이점이 그 자리에 있었고, 이 닫힌 세계는 그들의 진입 시도에 여전히 불응했다.
“케이스 코드네임 「In Dulci Jubilo감미로운 기쁨 속에서」라면, 이 반복되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현상을 멈출 수 있는 전말입니까?”
“글쎄요, 우선 대답은 간단합니다.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좋겠다.’란 하나의 소망에 기인한 거죠.”
“그리고요.”
“기쁜 크리스마스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가 죽으면 안 됩니다. 현상을 유발한 유산이 아마 그 소망에 부응한 것이 원인입니다.”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까?”
“제 생각에는.” 짧게 울리던 총성을 상기하던 에이전트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현상이 절망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기현상을 빚어내고야 마는 ‘인간성’의 속성을 새삼 짚지 않을 수밖에 없어서였다.
“트리거를 예의 무기 레니게이드 비잉이 지각해야만 파훼될 것 같습니다.”
“트리거라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체념하리란 말입니까?”
숨 가쁘게 넘어가는 기록 용지 앞에서 벌어지는 추론은 일견 무익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가능성을 감수하고 누군가의 구명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사람됨의 일환으로서, 이 바깥에 있는 유리구 너머에서 하나의 소망을 관조했다.
“혹은…….” 역류하던 세빙이 다시 도시의 밑바닥을 향해 가라앉기 시작했다.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이 모든 상황을 바라는 게 자신이란 사실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가능해질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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